36. 신약 성경상의 하나님의 율법

2013.01.18 14:02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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예수는 남녀들을 속박의 멍에로부터 자유케 하고자 오셨다. 바울은 “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”고 말한다(갈 5:1). 성서의 여러 구절이 인간들위에 놓여져 있던 시기에 어려운 속박의 멍에에 관해 말하고 있다. 마태복음 23:1-4; 사도행전 15:10; 갈라디아서 2:4; 베드로후서 2:19을 읽으라. 그러나 속박의 멍에는 하나님의 도덕률이 아니었다.

(1) 십계명 중 어느것이 말살될 수 있었는가?
① 제1계명은 아니다. 만일 그렇다면 다신교를 인정하는 것이 될 것이며, 따라서 사람들이 많은 신을 믿는다면 그리스도의 보혈이 사람들을 구원할 수 없었다.
② 제2계명도 역시 마찬가지이다. 우상에게 절하는 사람들은 복음과 그리스도의 보혈을 필요로 한다.
③ 예수는 제3계명이 구속력을 지니고 있다고 말씀하셨다(마태복음 5:34; 야고보서 5:12을 읽으라).
④ 제4계명을 말살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최대의 축복을 말살하는 것이 될 것이다. 예수는 안식일을 지키셨다(누가복음 4:16; 마가복음 2:27 을 읽으라). 안식일은 영원 만큼이나 영속적인 것이다(이사야 66:22, 23을 읽으라).
⑤ 제5계명은 모든 가족 관계의 기초이다. 이것은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다(에베소서 6:1, 2을 읽으라).
⑥ 예수는 제6계명의 구속력을 지닌 주장을 높이셨다(마태복음 5:21, 22을 읽으라. 요한일서 3:15도 읽으라).
⑦ 마지막 네 계명도 포기할 수 없다. 각각은 필수적이며 이들 명령들을 그리스도의 능력을 통하여 더욱 더 엄밀하게 지킬수록 우리에게 평강, 기쁨, 행복, 사랑과 능력이 뒤따른다(시편 119:97, 165을 읽으라).
⑧ 하나님의 율법은 속박의 멍에가 아니다. 이것은 자유의 율법이라 불리워지고 있다(야고보서 1:25을 읽으라).

(2) 의문률들 중 어떤 것이 기속력(羈束力)이 있는가?
① 유월절은 메시야에 관한 예언이다(고린도전서 5:7을 읽으라).
② 오순절은 성령을 부어주심을 상징하는 것이었으며 요제로 단을 가져온 날로부터 50일째에 해당된다(출애굽기 23:16-19을 읽으라. 사도행전 2:1-4 비교).
③ 초막절은 그리스도의 최종적 구속사업에 관하여 유력하게 교훈하는 것이었다.
④ 대속죄일은 그리스도의 속죄를 기억하게 하는 것이었다(히브리서 9:12-14을 읽으라).
⑤ 할례는 하나님과 아브라함, 그리고 그 후손들 사이에 영원한 언약을 나타내는 표징이었다(창세기 17:9-14; 고린도전서 7:19을 읽으라).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교훈을 포함하였다(신명기 10:16; 30:6 을 읽으라).
⑥ 이 모든 절기들과 할례는 십자가에서 폐지되었다(골로새서 2:14을 읽으라).
☞ 신약은 의문률들을(할례가 이 모든 체계를 대표하는 것으로 종종 사용되고 있다) “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”로 바라다 본다(행 15:1, 5, 10). 또한 유대인과 이방인을 분리시켜 “원수”로 만든 “중간에 막힌 담”(엡 2:14, 15)이며, “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” 것이다(골 2:14). 의식들은 모형을 통하여 복음을 가르친다(히 4:1, 2). 또한 이 의식들은 아담 이후 계속해서 인간에게 주어졌고 성소제도에서 확대되었다. 그런데도 신약은 왜 이것을 그토록 호의적이지 못한 눈으로 바라다 보는 것일까? 두 가지 이유가 있다. (1) 유대인들은 의식 행함을 구원 제도로 바꾸었다. 이것이 의식을 기속력 있는 것으로 만들었다(베드로와 바울의 논증을 참조할 것-행 5:9-11; 갈 2:16; 5:4-6). (2) 유대인들은 수많은 랍비적 교훈들과 요구들을 덧붙임으로 의식 제도를 왜곡시켰다(마가복음 7:1-13을 읽으라).

(3) 예수는 십계명을 어떻게 간주 하셨는가?
“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”(요 15:10). 마태복음 22:36-40을 읽으라. 시편 40편 8절은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이다.
☞ 도덕률은 영원한 것으로서, 창조주와 그의 피조물들 사이의 관계 속에 그 뿌리를 박고 있다. 의문률은 본질상 표상적인 것으로서 그 기능이 충족되면 사라져야 할 것이었다.

◎ 결 론
그리스도가 이 땅에 계실 때 인간들은 사람이 만든 율법에 속박되어 있었다. 예수는 “가라사대 화 있을진저 또 너희 율법사여 지기 어려운 짐을 사람에게 지우고 너희는 한 손가락도 이 짐에 대지 않는도다”라고 말씀하셨다(눅 11:46). 그는 더 나아가서 “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저희의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저희의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저희는 말만하고 행치 아니하며 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”라고 말씀하셨다(마 23:2-4). 예수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것을 가르치셨다(마태복음 7:21-27을 읽으라).